1

박경리의 “토지”를 모른다는 이유로 피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정신과 의사로서 한 가지 근원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스친다.
왜 우리의 '상식'은 저마다 이토록 다른 걸까.
상식이란 글자 그대로 '모두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 지식'일까?
그렇다면 누구나 알 법한 지식을 모르는 이는 상식이 부족하고 개념이 결여된 자로 규정지어져야 마땅한가.


2

우리가 '보편적 진리'라 믿는 것들은 사실 얇은 얼음판 위에 간당간당 서 있다.
누구나 사실로 받아들일 것 같은 진화론이나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사실조차 누군가의 세계관 안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결국 우리가 상식이라 부르는 것은 각자가 살아오며 구축한 고유한 세계관들이 우연히 겹쳐진 ‘교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교집합의 면적과 좌표가 개인의 경험, 환경, 관심사에 따라 완전히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나에게는 거대한 대륙 같은 상식이, 타인에게는 지도 밖의 미지의 영역일 수 있다.
의사라면 당연히 알야할 의학 용어 중에 NPO와 RD라는 말이 있다. 금식과 일반식을 뜻하는데, 여기서 RD(Regular Diet)를 우리말로 옮기면 흥미롭게도 상식(常食)이 된다.
의사 집단에서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이 ‘상식’이 병원 문밖을 나서는 순간 낯선 외계어가 된다.
상식의 유효 반경이란 본래 이처럼 좁고 상대적이다.


3

타인과 마주 앉아 "이 사람은 상식이 있다, 없다"를 저울질하기 시작하면 대화는 그 즉시 단절된다.
소통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얼까.
"우리가 공유하는 교집합은 어디쯤일까요?"라며 서로의 지평을 조심스레 가늠해보는 태도가 아닐까.
만약 특정 영역에서 교집합이 전혀 겹치지 않는다면, 그 주제는 다른 교집합을 가진 이와 나누면 그만이다. 왜 나와 똑같은 형태의 겹을 가지지 않았느냐고 상대를 다그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