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gyunlim shared this post · 1h ago
Jaehoon Jeong

술이 덜 팔린다. 주류시장 조사기관 IWSR에 따르면, 작년 세계 주류 소비량은 전년보다 2% 줄었다. 3년 연속 감소다. 스코틀랜드에서 통 속에 숙성 중인 위스키 재고가 약 14억L로, 현재 스카치위스키 세계 소비량의 약 3년 치에 이른다는 소식도 들린다. 물론 모든 나라에서 적게 마시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는 위스키 소비가 되레 늘었다. 세대와 성별에 따른 차이도 있다. 하지만 업계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술 소비 감소를 체감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와인업계는 특히 울상이다. 오는 11월 9일부터 술병에 경고 그림이 붙고 경고 문구 글자도 더 커진다는 소식에 외식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왜 술을 덜 마실까. 건강을 걱정해서, 물가가 올라서, 젊은 세대의 취향이 달라져서 또는 비만치료제 열풍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설명이 나온다. 어느 하나로 모든 술과 모든 나라의 사정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질문을 뒤집어 보자. 우리는 그동안 무슨 이유로 술을 마셨을까.

  • 우리는 왜 술을 마셨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에드워드 슬링거랜드 교수는 “술이 인류의 창의성과 협력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술은 대뇌 전전두엽의 통제 기능을 약화해 판단을 흐리고 자제력을 낮춘다. 흔히 음주의 단점으로 이야기하는 작용이지만, 슬링거랜드는 바로 그 덕분에 평소의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서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협력하려면 어느 정도 무장을 풀어야 한다. 술이 그 일을 도왔다는 것이다.

술 한 잔 마신다고 상대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를 푸는 데 술만 한 게 없다. 처음 만난 사람들의 모임, 속내를 털어놓기 어려운 동료와의 대화, 서로 호감은 있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남녀의 술자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클리셰라 할 만큼 자주 등장한다.

그런 관점에서 술 소비 감소는 술이 필요했던 자리가 줄어드는 것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일하고 놀며 관계를 이어 갈 수 있다면 한 공간에 모여 어색함을 견딜 일도 줄어든다. 온라인에서는 답을 고쳐 쓰거나 대화를 잠시 미룰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마주할 일이 줄면 술의 힘을 빌려 마음의 벽을 허물 필요도 함께 줄어든다. 모두 같은 속도로 잔을 비워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약해지면서 전보다 술을 적게 마시기도 쉬워졌다.

  • 한 잔의 위험은 얼마나 클까

적은 양의 술도 해롭다는 대중적 인식 변화 역시 음주 감소에 한몫했다. 미국 갤럽 조사에서 하루 한두 잔의 음주가 건강에 나쁘다고 답한 성인은 2018년 28%에서 2025년 53%로 늘었다. 같은 조사에서 술을 마신다고 답한 비율은 2023년 62%에서 2025년 54%로 떨어져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적포도주가 심장에 좋다는 ‘프렌치 패러독스’로 세계가 떠들썩했다. 건강을 생각하면 와인을 더 마셔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과거 연구의 비교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반론이 나오면서 판이 바뀌기 시작했다. 건강이 나빠져 술을 끊은 사람까지 비음주자로 분류하는 바람에 비음주자의 건강이 실제보다 나빠 보였고, 그만큼 소량 음주의 효과가 부풀려졌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소량의 음주도 해롭다는 연구가 잇따르면서 술자리 자체를 피하는 사람도 늘었다. 술이 건강에 좋다는 말은 옛이야기가 됐다. 그렇다면 모두가 술을 끊어야 할까. 이를 판단하려면 위험의 크기부터 알아봐야 한다.

지난해 미국 의무총감은 권고문에서 호주 성인 약 22만명을 추적한 연구를 바탕으로 음주량에 따른 암 위험을 제시했다. 80세까지 알코올 관련 암 누적 발생 위험은 주당 한 잔 미만을 마시는 여성이 약 16.5%, 하루 한 잔을 마시는 여성은 약 19%였다. 남성은 각각 10%, 11.4%였다. 하루 한 잔을 마시면 여성은 2.5%포인트, 남성은 1.4%포인트 높아지는 셈이다. 여기서 한 잔은 순수 알코올 14g이다. 이 수치는 모든 암이나 사망 위험이 아니라 알코올과 관련된 일곱 종류의 암(구강암·인두암·후두암·식도암·간암·대장암·유방암)에 대해 추정한 것이다.

공중 보건 차원에서 무시할 숫자는 아니다. 많은 사람이 마시면 사회 전체에서 그만큼 추가로 발생하는 암도 많아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의 차원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캐나다 약물사용·중독센터의 추산에 따르면 음주 관련 조기 사망의 평생 위험은 주 2잔을 마실 때 약 0.1%, 주 6잔에서는 약 1%다. 상대적으로는 10배이지만 절대적인 차이는 약 0.9%포인트다. 아예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지만 위험을 알고 가끔 한두 잔을 즐기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물론 암 가족력과 질환, 복용하는 약에 따라 개인적 판단은 달라진다.

  • ‘적당히’를 정하는 기준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생기는 아세트알데히드를 처리하는 효소의 활성이 낮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런 사람이 음주를 계속하면 식도암 등의 위험이 더 커진다. 마셔서 주량을 늘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냥 마시지 않는 편이 좋다.

마시기로 했다면 나에게 ‘적당히’가 얼마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술잔 크기는 제각각이다. 앞서 암 위험을 설명할 때 쓴 한 잔은 순수 알코올 14g이다. 도수 16~17% 소주로는 약 두 잔(잔당 50mL), 5% 맥주로는 작은 캔 하나(355mL), 12% 와인으로는 한 잔(150mL), 40% 위스키로는 45mL에 해당한다.

일주일 내내 참았다가 하루에 몰아 마시는 일도 피해야 한다. 마시기 전에 양을 정하고, 작은 잔에 따라 음식과 함께 천천히 마시는 편이 낫다. 중간에 물이나 무알코올 음료를 마시면 음주 속도를 늦춰 전체 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단, 안주와 물이 알코올을 무해하게 만들진 못한다. 임신 중이거나 운전할 때는 마시지 않아야 한다.

구체적인 수치가 아니더라도 음주 습관을 점검할 수 있는 쉬운 질문이 하나 있다. 내가 술을 통제하는가, 술이 나를 압도하는가. 어쩌면 21세기는 내가 술을 통제한다는 답이 다수가 되는 역사상 최초의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주말]
[정재훈의 먹다가 궁금할 때] (13) 왜 우리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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