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gyunlim shared this post · 2h ago
Jaemin Choung

[결혼은 예술, 이혼은 과학]
1년쯤 전, 50대 후반의 A가 이혼 상담을 하겠다며 찾아왔다. 마른 몸에 웃음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티가 났다. “서울에 자가 있고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입니다.” 명함을 건네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표정은 곧 어두워졌다. “드라마 속 김 부장 아내는 남편이 임원 승진에서 떨어져도 두 팔 벌려 안아주지 않습니까. 제 아내는 이혼하재요.”

A가 임금피크제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이 늘자 다툼이 잦아졌다고 했다. 자신은 종일 집에 있으면서 청소도 설거지도 도맡아 하는데, 아내는 등산에 골프에 종교 모임에 동창회에 바쁘다는 것이었다. 잔소리를 했더니 아내는 “당신하고는 너무 말이 안 통한다”며 이혼과 집의 재산 분할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자신도 화가 나서 먼저 이혼소송을 제기하려고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이렇게 손절을 당하고 나니 배신감이 큽니다. 내가 진즉 먼저 손절했어야 했는데 물타기만 해온 셈이지요. 아내는 평생 주부로 일했고 나 혼자 일해서 아파트를 내 명의로 샀는데 왜 나눠줘야 합니까. 안 줘도 되지요?” 답은 ‘아니오’다. 그 정도 오래 산 부부라면 전업주부도 40% 안팎을 받는다. 그러나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재산 분할이 아니다.

A는 결혼을 주식 투자에 비유했다. 주식과 결혼은 닮은 데가 있다. 둘 다 미래를 향한 선택이고, 막상 해보면 예측을 벗어나며, 갈아탈수록 손해가 난다. 그러나 주식은 분산 투자가 되지만 결혼은 ‘몰빵’이다. 주식의 가치는 시장이 정하지만 결혼의 가치는 당사자가 정한다. 무엇보다 주식 투자자는 회사를 직접 경영하지 않지만 결혼 당사자는 회사 CEO처럼 결혼의 주체이자 책임자다.

주식 격언에 “매수는 과학, 매도는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살 때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만 팔 때는 탐욕과 불안 같은 주관적 감정과 우연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이다. 전직 가정법원 판사이자 이혼 소송을 하는 변호사로서 나는 “결혼은 예술, 이혼은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할 때는 주관적 감정과 우연이 크게 작동하는 반면, 이혼을 할 때는 상대와 자신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 있고 감정이 빠진 상태라 이성적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혼 여부를 과학적으로 판단하려면 먼저 원인을 찾아야 한다. 원인이 다른 데 있는데 이혼부터 하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이혼을 하면, 상대만 사라질 뿐, 불행은 그대로 남는다. A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사모님이 모임에 나가면 그날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기분은 어떠십니까?” 부부 상담가들이 지금의 불행이 배우자 탓인지, 아니면 부부 갈등으로 터져 나온 것인지 가릴 때 던지는 질문이다. 배우자 때문에 불행하다면 그가 곁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기분이 크게 달라야 한다. A는 그렇지 않았다. “똑같죠 뭐. 텔레비전 켜놓거나 유튜브 보거나. 회사에만 충성하다 보니 아는 사람은 다 회사에 있는데 임금피크 이후로는 만나기가 좀 그래서….”

달라진 쪽은 A였다. 20년 이상 헌신한 회사가 이제 나오지 말라 하고, 월급은 3분의 1로 줄었고 그마저도 3년이면 끝난다. 회사 사람을 안 만나니 약속도 없어져서 종일 집에 있었다. 몸은 점점 굳고 무거워졌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종일 바쁘고 즐겁고 활력이 넘쳐 보였다. A가 느꼈다는 ‘배신감’이 부부 간 행복의 격차와 무관했을까. 그는 아내 때문이 아니라 인생 최대의 변화를 겪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직장 없이도, 배우자 없이도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퇴직을 앞두고도 제2의 삶을 바로 즐길 수 있었겠지만, 평생 회사만 바라보던 A는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듯했다.

사는 듯 사는 능력’ 가운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대화를 잘하는 능력이다. 이혼 상담을 청해 오는 분과 대화를 해보면, 배우자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과도 대화가 잘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A도 그랬다. 아내나 자녀의 입장을 물어봐도 결국 자기 입장 이야기로 끝났다. 그것도 감정 표현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말들이나, 자신이 할 만큼 했다는 방어적인 말들이었다.

혼자 있으면 편할 뿐, 행복은 사람 사이에서 온다. 그 행복은 대개 대화를 할 때 만끽하게 된다. 술을 마시는 것도,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여행을 가는 것도 결국 즐거운 대화를 하기 위한 일이다. 대화를 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그리고 상대의 말에 열심히 반응해 주는 것. 수시로 웃음꽃을 피우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관찰해 보면 말하는 사람은 감정 표현이 많고, 듣는 사람들은 수시로 ‘어머’ ‘진짜?’ ‘저런’ 같은 추임새와 함께 웃음과 박수로 끊임없이 ‘리액션’을 한다.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들이 더 활발하게 반응한다. 밴드에서 보컬보다 기타, 드럼, 키보드, 베이스가 활발한 것처럼.

상담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할 만큼 했다고 하시지만 이혼 소송하기 전에 딱 한두 가지만 더 해보시죠. 회사를 떠날 때가 되니, 수영을 배우지도 못한 분이 갑자기 물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막막하실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옆에 오랜 세월 혼자 수영을 익혀온 분이 계시잖아요. 한번 배워 보시죠. 잘 사는 법을. 부인이 귀가하면 어디서 뭘 했느냐고 캐묻는 대신, 뭐 때문에 그리 즐겁냐고 물어보시죠. 한마디 할 때마다 ‘그래?’ ‘진짜?’ 같은 ‘리액션’ 꼬박꼬박 해보세요.” A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Kyoung Tae Park 글이 예술입니다. 8h ago
Jaemin Choung Author 박경태 앗 사장님ㅋ 댓글도 그렇습니다 2h ago
조기숙 진정 훌륭하신 변호사님입니다! 11h ago
Jaemin Choung Author 조기숙 아 그건 아니고요ㅎ 9h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