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모멘텀 (이인숙, 김보미, 김원장, 유민영, 임수정, 한운희, 2026, 플랫폼9와3/4)
매우 앏은 책이다. 얼마 전 소개한 권효재의 <K-조선 대전환>만큼이나 짧다. 하지만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대전환>이 조선업 엔지니어 출신의 저자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여 조선업의 역사를 회고하고 MASGA를 포함한 미래의 과제를 탐사하는 '산업' 책이라면, <모멘텀>은 기자 출신의 컨설턴트들이 하이닉스 주요 인물을 인터뷰하고 쓴 '리더쉽' 책이다.
그러니까 반도체 (또는 AI)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책이 아니라, 파산 직전의 하이닉스 인수 전후로 하이닉스와 SK 각사 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인수 후 PMI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HBM 개발 동력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HBM2 의 실패를 극복한 저력은 무엇인지를 살피는 책이다.
돌이켜보면 2011년 SK의 하이닉스 인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무모해 보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SK는 이미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고, 표준화된 제품인 메모리는 특별할 것도 없고(책에서 커머디티 성격을 극복하기 위한 최회장의 비전도 볼 수 있다), SK는 인더스트리 지식도 글로벌 경쟁 비즈니스의 경험도 무엇보다도 자본도 시덥지 않아 보였다. 이 시기 전후로 하이닉스를 몇번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만나본 현장 엔지니어들이 근성 있어 보이는 것, 그것은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산업부 내부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2007년 이후 시장만능주의와 금융화가 깊게 진행되어, 산업부 관료들조차 산업정책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쭈삣쭈삣했고, 빅딜 결과가 보잘 것 없다고 부끄러워하면서 빠지고 싶어했다. 그래도 언제나 일을 만드는 소수는 있는 법이다. 산업부 내 TF는 하이닉스 딜을 달성하기 위해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국내 주요기업들과 논의를 이어갔고, 다른 기업들이 다 비웃을 때 SK가 움직였다. SK 내에서도 대부분 비관적이었지만, 최태원 회장이 돌파했다.
후일담에 의하면, 정부와 채권자는 모두 SK가 포기할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그만큼 어려운 딜이었다). 하지만 최회장은 조용히 소수의 사람들과 리서치를 엄청나게 깊게 오래 한 상태였다. SK텔레콤 탑으로서 글로벌 IT 업계 인맥으로부터 학습한 것도 중요했다. 인수 결심은 확고했지만, 딜 과정에서 이것을 감추었고, 채권자들은 SK가 요구한 조건(책에는 신주 발행과 그 인수로 나온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이야기는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PMI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수보다 사후 통합과정에서 어그러져 결과가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SK는 최고 책임자가 커미트하고, 피인수기업의 문화를 존중하면서(사실 그 이상이었다. 하이닉스의 '독한 문화'가 역으로 SK에 확산되기도 했다) 진행되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기자 출신들이라 취재에 공을 들였고, 독자 전달력도 아주 훌륭했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