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gyunlim shared this post · 1h ago
Sim Youngseop

<더 드라마> 이 영화 꼭 극장에서 봐 보세요. 넷플릭스에 뜰 때까지 기다릴 영화가 아닙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아울러 밑의 리뷰는 스포일러가 많음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 더 드라마 (The Drama, 2026) >

연애시절에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오히려 몰랐으면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찰리와 엠마처럼.

찰리는 엠마를 까페에서 본 후 첫눈에 반했다. 찰리는 엠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엠마가 읽던 책을 사진 찍어 검색한다. 제목은 <The Damage>, 작가는 하퍼 엘리슨(Harper Ellison)으로 설정된 허구의 책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감독 크리스토퍼 보글리 (혹은 크리스토페르 보르글리) 감독이 붙인 책 이름이다. <The Damage> 매우 중의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한쪽 귀가 ‘손상(Damage)’당한 엠마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고, 그 만남이 결국 ‘드라마(Drama)’가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고 암시하기도 한다.

찰리는 엠마가 읽고 있던 <The Damage>를 읽었다고 거짓말한다. 나중에 그는 사실을 고백하고 둘은 웃는다. 그러니까 이 사랑은 처음부터 아주 작은 허구(fiction) 위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귀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의 모든 것 중 하나인 이미지다. 엠마의 귀가 익스트림 클로즈업되고, 찰리가 말을 걸지만 엠마는 듣지 못한다. 찰리는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귀여운 연애의 오해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나중에야 그 귀의 청력 손실이 엠마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진실은 처음부터 화면 안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잘못 읽었을 뿐이다. 〈더 드라마〉는 바로 인간사이에 일어나는 ‘오독’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듣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보지만 잘못 해석한다.

영화는 곧 물어 볼 것이다. “왜 어떤 거짓말은 귀엽고, 어떤 비밀은 용서할 수 없는가?” 그 경계는 누가 정하는지를.

엠마가 15살 무렵 총기 난사를 진지하게 실행하려 했었고, 총을 발사하는 과정에서 귀를 다쳤다. 찰리와 친구들이 이를 알게 되자, 찰리는 사랑이란 언어로 읽어 내려갔던 그녀를 폭력과 충동성이란 언어로 다시 편집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나누면서 침대에서 뺨을 때렸던 일. 장난으로 바지를 내려버렸던 일. 꽃. 표정. 손짓. ‘Coffee or I’ll Shoot’라고 적힌 머그잔.

증거는 무수히 드러난다. 사랑이 의심으로 바뀌는 순간 찰리는 신경증적으로 성실한 수사관이 된다. 찰리의 엠마에 대한 회상 장면은 현실처럼 보이는 상상이며, 현재의 불안을 증명하기 위한 과거의 편집일 뿐이다. 빠른 팬과 점프컷, 불쑥 끼어드는 삽입 쇼트와 플래시 이미지는 찰리의 불안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의심처럼 연출은 그대로 작동한다. 하나의 장면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기억이 끼어들고, 사소한 이미지 하나가 갑자기 증거가 된다. 영화의 편집은 점점 찰리의 시선을 닮아간다. 이미지들이 서로를 고발하기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엠마의 직업은 편집자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편집자는 찰리고, 또 그 이야기를 술에 취해 함께 들은 친구 레이첼이다.

레이첼은 엠마의 삶 전체에서 가장 끔찍한 한 장면만 잘라낸다. 십대의 엠마는 학교 총격을 계획했다. 그러나 실행하지 않았다. 이후 엠마는 총기 규제 운동에 헌신했다. 친구를 만들고, 일을 하고, 사랑하고,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고백이 끝나는 순간 그 모든 시간은 사라진다. 레이첼은 엠마에게 단 하나의 문장을 압핀처럼 꽂아둔다.

‘학교에서 총기난사를 계획했던 여자.’

엠마라는 이미지에 커다란 도장이 찍히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설명하는 문장이 달라진다. 레이첼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 그녀의 사촌 샘은 실제 총기 폭력의 피해자이며 휠체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레이첼 역시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었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옷장에 가두고 문을 잠근 상황. 위험한 상황에서 그대로 떠났던 일. 그럼에도 그녀는 자기 행동에는 맥락을 허락한다. ‘결국 괜찮았잖아.’

찰리 역시 점점 같은 함정에 빠진다. 그는 결국 휠체어를 탄 샘을 거리에서 만나 쫒아다닌다. 찰리는 판결을 구하는 사람처럼 샘에게 매달린다. 실제 총기 피해자의 몸 앞에서 그는 엠마를 사랑해도 되는지 확인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샘은 엠마를 모른다. 엠마가 어떤 십대였는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무엇이 그녀를 멈추게 했는지 모른다. 엠마의 과거는 일어나지 않은 폭력의 가능성이었고, 샘의 몸은 이미 일어난 폭력의 흔적이다. 그 둘을 같은 머릿속 화면에 놓게 되자, 샘의 도덕적 판단은 갈갈이 찢어진다.

엠마는 총을 쏘고 싶어 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이후 총을 없애기 위해 싸운 총기 규제 운동에 전념했다. 둘 중 하나만 진짜인 것은 아닌데도. 찰리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점차 시들어 간다. 아마도 엠마의 과거를 사람들이 알 수도 있다는 사실, 친구들이 엠마를 도덕적으로 용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실제 엠마의 역사적 사실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럴수록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의 카메라 역시 사람들을 자꾸 나누어 찍는다. 같은 방에 있고, 같은 소파에 앉아 있고,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둘은 좀처럼 하나의 투숏 속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카메라는 찰리를 찍고 휙 팬하여 엠마에게 도망간다. 쇼트와 리버스 쇼트가 그들을 싹둑 자른다. 공간적으로는 함께 있지만 영화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 카메라는 사람을 분절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분절해서 이해한다. 한 삶을 한 사건으로 잘라내고, 그 한 사건의 이야기를 그 사람 전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The Crime〉도 〈The Secret〉도 아니다. 〈The Drama〉다. 실제로 벌어진 사건보다 사람들이 그것을 말하고, 다시 말하고, 해석하고, 소비하는 과정이 더 큰 사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둘의 결혼식은 그 거대한 서사가 무너지는 무대다.

결혼식이란 본래 하나의 집단적 전시회 아닌가. '우리는 서로를 압니다. 우리는 사랑합니다. 그래서 함께 살겠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그 이야기가 진실임을 증언하게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가 무너진다. 영화 역사상 최악의 결혼식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찰리의 거짓말도, 엠마의 과거도, 친구들의 위선도, 완벽한 사랑의 서사도. 찰리의 몸까지 처절하게 무너진다. 토하고, 맞고, 울고, 옷이 피로 물들여 진다.

처음에는 엠마가 토하고, 나중에는 찰리가 토한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한 무의식의 찌꺼기들을 밖으로 밀어낸다. 무의식이 담긴 몸은 때때로 의식의 설명을 믿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shot과 총을 쏘는 shot도 겹친다. 찍는 것도 shot이고 쏘는 것도 shot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웨딩 사진을 찍는 동안의 음향 효과는 끊임 없이 총을 쏘는 것 같은 소리가 홀에 번진다.

흥미로운 것은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처음에는 영국 남자 역할의 찰리를 꽤 싫어했다고 인터뷰 한 것이다. 그러나 연기를 계속하면서 점점 그 인물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배우 자신이 찰리를 대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주제와 닮지 않았는가. 패틴슨은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해 사랑에는 ‘믿음의 도약(a leap of faith)’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그 추상적인 말은 이상하리만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오래 머문다. 모든 것이 무너진 뒤 두 사람은 햄버거 가게에서 다시 마주 한다. 엠마는 웨딩드레스 위에 커다란 파카를 걸쳤고, 찰리는 얻어맞은 얼굴로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다. 완벽한 결혼식의 이미지는 산산조각이 났다. 햄버거 집에는 꽃도 없고, 음악도 없고, 하객도 없다. 남은 것은 두 사람뿐이다.

처음 만났을 때 찰리는 거짓말을 했다. “그 책 읽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거의 모르면서 알고 싶어했고, 그 작은 허구에서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정반대다. 이제 둘은 너무 많은 것을 안다. 상대의 비겁함도 알고, 거짓말도 알고, 충동도 알고, 가장 꼴 사나운 과거의 생각도 안다. 첫 만남은 모르는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간다고 믿는 만남이었는데, 마지막 만남은 너무 많이 알아버린 두 사람이 다시 모르는 사람처럼 상대를 바라본다.

사람은 자신의 가장 나쁜 이야기보다 더 큰 존재일 수 있는가.

이야기가 무너진 뒤에도 아직 모르는 한 사람이 내 앞에 남아 있기에. 다 알지 못하더라도, 다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쪽으로 한 걸음 더 내딛는 일. 그 불확실성을 안고도 다시 한 번 자리를 내어주는 일.

이 영화의 마지막의 햄버거집 장면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그러하듯 내 가슴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모든 장식과 소품이 사라졌는데도, 둘은 처음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고, 더 진짜 같은 둘만의 결혼식을 치르는 것 같다.

환상은 사라졌고, 대신 한 인간이 남았다. 다시 상처받지 않을 거라는 약속이 아니다. 어쩌면 또 실패할 수도 있고, 다시 서로를 오해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한 번 더 그 사람 앞에 앉아보는 것.

완벽한 이야기를 믿는 일이 아니라, 이야기가 모두 망가진 뒤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한 사람을 믿어보는 일. 상대에 대한 달고 쓰고 맵고 떫던 기억을 다 가진 채 다시 상대를 선택하는 일

그 불확실한 선택. 그 한 걸음.

사랑.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믿음의 도약.

  • 심영섭
김해자 작가님만의 서사에 몰입감 최고입니다. 꼬옥 극장에서 만날께요.^^ 2d ago
박혜인 찜해둡니다 2d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