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가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토이스토리5 주제곡을 써달라고 요청한 건 작년 9월이었다. 하지만 스위프트는 이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물론 스위프트도 토이스토리를 보면서 자란 아이 중 한 명이었지만, 굳이 영화음악에 시간을 낼 이유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 이 마음을 돌린 건 제작자 제시카 최였다.
제시카 최는 스위프트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보낸다. 거절하셔도 부담가질 필요는 전혀 없지만, 단지 우리가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배경을 설명하고 싶었다는 정중한 내용으로 시작한 이 편지는 남성 중심의 프랜차이즈 영화가 여성 중심 서사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동안 우디와 버즈의 버디무비였던 영화가 이번엔 제시를 주인공으로 삼게 됐다고. 제시가 장난감이 아니었다면 스위프트처럼 남성 중심적 세상에서 스위프트에게 영감을 받아 온 세상을 손에 쥐었을 거라고. 테일러는 결국 이 편지 때문에 마음을 돌린다.
그렇다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계약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스위프트는 비공개 시사를 요청한다. 올해 2월 제작진은 스위프트에게 마무리 작업중이던 영화를 보여줬고, 스위프트는 그 자리에서 노래를 쓰기로 결정한다. 단순히 결정만 한 게 아니었다. 오전 11시에 시사회에 참석했던 스위프트는 집으로 돌아온 뒤 바로 작곡에 들어간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제시를 위한 노래가 어떤 곡이어야 할지 생각이 다 났다고. 그렇게 그날 오후 7시에 새 노래 "I Knew It, I Knew You"가 완성된다. 스위프트는 이 노래를 만드는 일이 그 순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시급한 일인 것처럼 일했다고 한다. 스위프트가 노래를 다 쓰고 나서 올린 영상을 보면, 2시간 뒤에 밥 아이거(디즈니 CEO)가 노래를 들어보러 오기로 해서 급히 녹음해야 한다고...
이렇게 소수의 제작진만 스위프트의 노래를 아는 상태에서 영화가 개봉한다. 제작진은 개봉 직전까지 시사회에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이 노래가 없는 버전의 토이스토리5를 따로 제작해서 (스위프트의 참여 사실을 모르는) 내부 직원들과 언론사에게 별도 시사회를 열 정도였다.
이 노래는 듣다보면 에어서플라이의 Even the Nights are Better, 그리고 퀸의 Don't Stop Me Now 같은 익숙한 노래들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멜로디와 진행의 유사성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노래를 듣고 나면 어색하지 않고 아련하게 익숙한 느낌이라, 표절 시비를 걸기보다는 오히려 90년대 팝송의 분위기를 강하게 드러내줘서 영화와 잘 어울린다는 평을 많이 듣는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듣자마자 빠져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건 다들 비슷한지 이 노래는 기록도 엄청 세웠는데, 디즈니 영화음악 가운데 처음으로 빌보드 핫100 싱글차트에 1위로 핫샷데뷔(계단을 오르는 게 아니라, 나오자마자 바로 1등)한 노래가 됐다. 셀린느 디옹의 타이타닉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 이 후 28년 만에 싱글차트 1위를 한 여성가수의 영화 및 애니메이션 주제곡이기도 하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 노래 덕분에 여성 가수 중 머라이어 캐리(19곡)에 이어 가장 많은 곡(15곡)을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렸다. 나이와 꾸준한 인기를 감안하면 아마 머지 않아 1위에 오를 듯. 그리고 지금 빌보드차트에서 1, 2위가 이 노래와 엘라 랭리의 Choosin' Texas인데, 여성 컨트리가수가 나란히 이 차트에서 1, 2위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여러모로 놀랍다. 이 모든 걸 만들어 낸 편지 한 장의 힘도 대단하고. 언제나 진실함이 사람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