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될 예정이다.
# ==나는 대체될 예정이다.==
## 1
나는 대체될 예정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가능성이 꽤 높다. 아직 HR에서 공식 메일이 온 것은 아니고, 회사 출입증이 갑자기 먹통이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백엔드 개발자이자 서버 운영을 조금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분석 결과는 좋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요구사항을 읽는다. 애매한 부분을 질문한다. API를 설계한다. 코드를 작성한다. 테스트를 만든다. 로그를 뒤진다. 장애 원인을 추적한다. 배포가 실패하면 원인을 찾고, 성공하면 내가 한 일이 맞는지 조용히 의심한다.
문제는 AI가 이 목록의 거의 모든 항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AI가 그 일을 빠르게 한다는 것이다.
## 2
가장 큰 문제는, 가끔은 나보다 더 침착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것을 도구라고 생각했다. 아주 똑똑한 자동완성. 조금 수다스러운 검색 엔진. 귀찮은 보일러플레이트 코드를 대신 써주는 친절한 인턴 정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인턴은 코드를 고치고, 테스트를 제안하고, 장애 로그를 읽고, 내가 놓친 엣지 케이스를 짚기 시작했다.
불길한 성장 속도였다.
물론 AI에게도 아직 못 하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팀원들을 위해 커피를 사 오는 일.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인간 고유의 업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 커피 주문을 기억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카페까지 걸어가고, 플랫화이트 두 잔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와 “우유는 오트로 바꿔주세요”라는 요청을 처리하는 일은 아직 물리적 신체가 필요하다.
## 3
하지만 피지컬 AI가 로봇의 몸을 입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이 마지막 방어선도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상황은 더 우울해진다.
그때쯤이면 커피를 마실 팀원들도 대부분 대체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즉, 나는 커피를 사 올 필요도 없고, 커피를 마실 사람도 없고, 커피를 사 오던 나도 필요 없는 세계를 향해 착실히 이동 중이다.
좋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그 세계에서 나는 뭘 해야 하지?
## 4
지금 쓰고 있는 책의 도입부를 앤디 위어 스타일로 바꾸면 어떨까 싶어서 해봤는데, 재밌구나.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