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는 이제 '자산'이 아니라 '종이컵'이다
요즘 AI가 코딩을 대체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흔히 나오는 방어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원래 단순 코딩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차피 중요한 건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기획력과, 시스템이 어디서 어떻게 깨지는지 아는 기술적 직관이다. 그러니 엔지니어는 살아남는다."
불안을 달래기 위해 내놓는 그럴듯한 자기위안이지만, 솔직히 말해 여전히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의 낡은 틀 안에서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 좁은 시야에 불과하다.
시야를 한 발짝만 더 넓혀보면, 전혀 다른 지평이 펼쳐지고 있다. 코딩과 구현 비용이 정말로 0에 수렴할 때 일어나는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기존 방식의 개발이 조금 더 편해지는 수준이 아니다. 바로 '소프트웨어라는 개념 자체의 물성(Property)'이 바뀌는 것이다.
1. '영속적인 자산'에서 '일회용 소모품'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무의식중에 전제 하나를 깔고 소프트웨어를 다뤄왔다.
"소프트웨어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들고, 배포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쓰이게 해서 수익을 내야 하며, 끊임없이 버그를 잡고 유지보수해야 하는 영속적인 자산(Asset)"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구현 비용이 사실상 0원이 되면 소프트웨어는 완전히 다른 물질이 된다. 튼튼하게 지어 올려 수년간 관리해야 하는 ‘건물’이 아니라, 한 번 쓰고 가볍게 구겨서 버리는 ‘종이컵’이나 ‘포스트잇’ 같은 일회용 소모품(Disposable)이 된다.
예를 들어 오늘 오후, 흩어져 있는 사내 데이터 서너 개를 취합해 당장 급한 분석 하나를 뽑아보고 버릴 도구가 필요하다고 치자. 여기에 유지보수성, 클린 코드, 확장성 따위의 아키텍처가 왜 필요할까? 쓰다가 문제가 생기거나 요구사항이 바뀌면 코드를 뜯어보며 디버깅할 이유도 없다. 그냥 그 자리에서 말 몇 마디로 다시 새로 만들어 쓰고 버리면 그만이다.
'유지보수가 아예 필요 없는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2. '상품화(Productization)'라는 피곤한 수고의 소멸
지금까지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굳이 '제품(Product)'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상품화했던 유일한 이유는, 만드는 고정비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한 번 개발하는 데 거액의 자본과 사람의 시간이 들어가니, 수많은 사람에게 N분의 1로 비용을 쪼개 팔지 않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시장에 내 문제를 100% 딱 맞춰 해결해 주는 도구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70%만 들어맞는 상용 SaaS를 구독하며 업무 방식을 프로그램에 끼워 맞추던 시대는 끝났다. 내 작업 방식, 내 특수한 데이터, 지금 내 상황에 딱 맞춘 맞춤형 도구를 즉석에서 만들어 나 혼자 쓰고 끝내면 된다.
남들에게 널리 쓰이게 하려고 범용적인 기능을 머리 싸매며 고민하고, 회원가입과 결제 모듈을 붙이고, 온보딩 UX를 깎아내는 그 피곤한 '상품화의 수고' 자체가 대다수 영역에서는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되어 증발해 버린다.
3. 엔지니어링의 퇴장과 순수 도메인 지식의 시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결국 기획력과 문제 해결력을 갖춘 엔지니어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는 기성 개발자들의 낙관론조차 무색해진다. 이런 소모성·초개인화 소프트웨어의 세계에서는 엔지니어라는 직군 자체가 아예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 영역에서 필요한 것은 복잡한 분산 아키텍처나 컴퓨터 과학 지식이 아니다.
- 매년 바뀌는 복잡한 세법과 판례 속에서 최적의 경로를 짚어내는 세무사
- 수많은 공정과 부품 수급의 미묘한 병목 타이밍을 꿰뚫고 있는 제조 현장의 관리자
- 환자의 다양한 혈액 검사 수치와 병력을 종합해 이상 징후를 판별하는 임상 의사
- 복잡하게 얽힌 계약 조항들의 상충 관계와 숨은 리스크를 잡아내는 법률 전문가
이처럼 각자의 영역에서 현실 세계의 복잡한 규칙과 문제를 온전히 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중간에 개발자를 거칠 이유가 전혀 없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도메인 맥락(Context)을 언어로 명확히 기술하기만 하면, 도구는 그 자리에서 즉시 만들어져 문제를 해결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소프트웨어 공학적인 전문 지식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가치는 사라지고, "우리가 풀고자 하는 현실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쥐고 있는 도메인 지식만이 유일한 핵심 경쟁력으로 남는다.
물론 거대한 인프라를 다루거나, 물리적인 하드웨어 제약과 네트워크 지연 시간을 극한으로 다투거나, 수조 원의 금융 자산이 오가는 미션 크리티컬한 시스템에서는 여전히 극소수의 하이엔드 엔지니어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우리가 '소프트웨어 개발'이라 부르며 엄청난 인력과 시간을 쏟아붓던 영역의 대부분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재편될 것이다.
하나는 극소수의 시스템 아키텍트만이 살아남는 거대 인프라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엔지니어링도 상품화도 모두 증발한 채 현업의 도메인 전문가들이 직접 도구를 빚어 쓰고 버리는 소모품의 세계다.
기성 엔지니어들은 여전히 그 중간 지대에서 "기획자와 개발자 중 누가 밥그릇을 지킬 것인가"를 다투고 있지만, 사실 그 중간 지대 상당수는 '애초에 제품으로 만들 필요조차 없는 것'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엔지니어가 기획자가 되는 수준의 작은 자리바꿈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라는 도구 자체가 무거운 외피를 벗어던지고 인간의 언어와 현실의 도메인 지식 속으로 완전히 녹아드는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다.
과연 agent는 표준화되고 판매되는 일이 생길까요?
예를 들어 메타 뮤즈같은 서비스 말입니다.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