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타이 매듭이 풀리는 속도 >
매일 아침 매던 넥타이가 있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서서 묻는다. 이걸 왜 매고 있지?
Atlassian, 52주 고점 대비 76% 증발. Salesforce 56%. Figma는 IPO 직후부터 52주 신저가를 갱신 중이다. Asana, HubSpot까지. 예외가 없다. Naval Ravikant가 말한 "Software was eaten by AI"는 Marc Andreessen의 2011년 선언,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운다"를 정확히 뒤집은 것이다.
SaaS는 도구를 넘어선 넥타이였다. 기능이 아니라 격식. 안 매면 일을 모르는 사람이 됐다. Jira는 매주 월요일 팀 전체에 넥타이를 매게 했다. 업무를 선언하고, 난이도 점수를 매기고, 진행 표식을 붙이게 했다. HubSpot은 고객을 단계별 칸에 넣고 옮기는 절차를 만들었다. Figma는 디자이너와 기획자를 한 화면에 모아 끝없이 코멘트를 달게 했다. 생산성과 무관한 행위가 반복되었고,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왜 매냐고 묻는 순간 이단이 된다.
"우리 팀은 Jira를 씁니다." 도구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 선언이다. Notion을 쓴다는 건 '우리는 그런 종류의 팀'이라는 신호였다. SaaS의 유일한 해자는 기술적 우위가 아니라 이 습관이었다.
이 드레스코드가 유지되려면 전제가 하나 필요하다. 누군가가 직접 넥타이를 매야 한다는 것. 사람이 업무를 등록하고, 사람이 고객 정보를 입력하고, 사람이 화면 위에 그림을 그린다. 매는 사람이 있어야 넥타이가 존재한다.
한 순간에 그 전제가 무너졌다.
AI는 격식 없이 결과를 낸다. 업무 등록 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주간 계획 없이 코드를 완성하고, 화면을 열지 않고 디자인을 만든다. 넥타이를 맬 필요가 없는 존재가 일을 해버리면, 넥타이는 쓸모가 없다.
Figma는 상장 직후부터 추락하고 있다. 디자인 도구의 위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작업해야 한다"는 전제의 위기다. Figma가 판 건 디자인 도구가 아니라 협업이라는 이름의 마찰이었고, 마찰이 클수록 구독 시간이 늘었다. Figma가 AI로 디자인을 자동화하는 순간, 사람이 Figma를 열어야 할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도구가 스스로를 살리려고 도입한 기능이 도구의 존재 이유를 지운다.
"좌석당 과금"이라는 수익 구조도 함께 무너진다. 1000명이 로그인하던 도구를 에이전트 3개가 대신한다. 에이전트는 좌석을 차지하지 않는다. 좌석에 앉을 사람이 없으면 공식이 깨진다.
왜 이렇게 됐을까. SaaS는 태생적으로 "사람의 비효율"을 수익원으로 설계된 사업이었다. 사람이 잊어버리니까 알림을 만들고, 사람이 서로 말이 안 통하니까 협업 도구를 만들고, 사람이 실수하니까 워크플로우를 만들었다. 인간의 인지적 한계 하나하나에 가격표를 붙인 것이다. 문제는, 그 한계를 보완하는 더 근본적인 방법이 나와버렸다는 거다. SaaS는 인간의 결함 위에 지은 건물이었고, AI는 그 결함 자체를 줄여버리는 기술이다. 건물이 아니라 지반이 바뀌었다. 리모델링으로는 답이 없다.
2차 충격은 더 넓다. 넥타이 위에 세워진 생태계 전체가 흔들린다. Salesforce 구현 컨설턴트, Jira 교육 업체, HubSpot 공인 파트너. 넥타이 문화가 사라지면 넥타이를 골라주던 스타일리스트도, 매는 법을 가르치던 학원도 함께 사라진다. SaaS 생태계의 진짜 규모는 구독료가 아니라 구독료 위에 쌓인 서비스 경제 전체다.
한국은 이 충격을 다른 각도에서 받는다. 한국 SaaS 생태계는 글로벌 대비 작고, 대부분 대기업 중심 외주 개발로 굴러간다. 몇몇 예외가 있지만 시장 자체가 구독 과금 모델에 덜 의존해왔다. 옷장을 채우기도 전에 옷장의 시대가 끝났다.
곧 AI 에이전트는 SaaS 구독을 스스로 취소할 것이다. 에이전트는 습관이 없다. 충성심도 없다. 더 나은 결과를 내는 쪽으로 0.1초 만에 이동한다. 매는 사람 없는 넥타이. 그게 SaaS의 최종 풍경일 것이다.
다음 장면은 더 낯설다. SaaS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API뿐이다. 화면이 없는 소프트웨어. 사람이 보는 대시보드도, 사람이 누르는 버튼도 없이, 에이전트끼리 호출하고 응답하는 기능의 원자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사람이 얼마나 오래 화면을 쳐다보는가"로 측정됐다. 그 지표가 통째로 뒤집힌다. 앞으로는 "에이전트가 얼마나 자주 호출하는가"가 된다. UI가 사라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브랜드는 의미를 잃고, 가격은 API 콜 단위로 쪼개지고, 경쟁은 밀리초 단위의 응답 속도와 정확도로만 결정된다.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보이는 소프트웨어를 이기는 시대. 그때 "좋은 제품"이란 사람이 좋아하는 제품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선택하는 제품이다.
이제 산소통이 등장했다. ChatGPT, Claude, Gemini, Grok. 넥타이는 안 매도 살 수 있었다. 습관이었다. 산소통은 다르다. 없으면 숨을 못 쉰다. A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인프라가 되었다.
SaaS라는 넥타이는 인간의 습관을 담보로 잡았다. 더 편한 넥타이가 나오면 갈아맸다. AI라는 산소통은 물리적 자원을 담보로 잡는다. 반도체가 있어야 생각을 돌리고, 전기가 있어야 반도체가 돈다. 광산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고, 발전소는 선언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넥타이는 풀 수 있었지만 산소통은 뗄 수 없다. 담보물의 격이 다르다.
넥타이가 사라지면 드레스코드도 사라진다. 2주 단위 스프린트, 고객을 칸에 넣고 옮기는 파이프라인. 보편적 진리가 아니었다. 특정 시대의 도구가 강제한 특정 시대의 격식이었을 뿐이다. 도구가 사라지면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백지가 된다. 그 백지 위에서 기준이 바뀐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 격식이 아니라 성과. 과정을 성실히 수행하면 좋은 일꾼이라는 산업시대의 계약이 파기된다. 결과만 남는 세계에서 과정은 비용이다.
더 깊은 균열이 온다. SaaS가 사라지면 "조직"의 윤곽도 흐려진다. 누가 어떤 프로젝트에 있는지, 이번 분기 목표가 뭔지. 이걸 알려주던 건 매니저가 아니라 Jira였고 Slack이었고 Notion이었다. 같은 넥타이를 맨 사람끼리 한 팀이 되었다. 넥타이가 사라지면 대열도 흩어진다.
아이러니는 SaaS 기업 자신이 이 사실을 가장 늦게 깨닫는다는 것이다. Atlassian은 Jira에 AI를 붙이면서 "더 스마트한 프로젝트 관리"를 말한다. 프로젝트 관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가능성은 그 언어 안에 없다. 자기 제품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는 한, 그 언어 밖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나도 어느새 투자 검토를 할 때 사람을 위한 도구를 더 잘 만드는 팀보다 AI를 위한 도구를 더 잘 만드는 팀에 더 큰 가중치를 주기 시작했다. 질문이 따라온다. AI를 위한 도구에서 궁극적인 해자는 무엇이 될까.
UX는 에이전트에게 무의미하다. 단순한 속도나 정확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해자는 에이전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 에이전트가 데이터를 쓰면서 동시에 데이터를 남기고, 그 데이터가 다른 에이전트의 성능을 높이는 순환. 쓰는 행위 자체가 원료를 생성하는 데이터의 광맥.
오픈소스가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데이터가 무료일 수는 없다. 희소한 데이터는 희소한 채로 남는다. 그것들이 어떤 구조로 가치 사슬을 만들지, 에이전트 간 인센티브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 매일 고민하고 있다.
YC의 Garry Tan은 이 폭락장에서 살아남을 회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Jack Dorsey나 Tobi Lutke처럼 직접 코드를 짜고 오픈소스 최전선에 서는 CEO들의 회사. 아직 매니저 모드에 있는 CEO들은 글쎄.
질문이 수렴한다. 당신이 쓰고 있는 그 SaaS 구독료, 도구에 내는 돈인가, 넥타이에 내는 값인가. 당신의 산소통은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만들고 있는 데이터는, 누군가의 광맥이 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