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gyunlim shared this post · 2d ago
Sung Ho Kyung

이 이야기는 허구다. 등장하는 병원, 인물, 사건은 모두 실제와 무관하다.

#0. FDE
어느 공공병원의 원장은 아침 회의에서 그 단어를 처음 발음했다. 에프디이. 발음이 어색해서 두 번 다시 말했다. 신문 기사에서 읽었다고 했다. 해외 대형병원들이 그걸 도입해서 AI 전환에 성공했다고 했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 중 아무도 그게 뭔지 몰랐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원장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으므로.

“우리도 그 에프디이인가 뭔가를 데려옵시다”

기획예산팀 김00 계약직 직원이 그 지시를 받아적었다.

#1. 도착
출입증 신청서에는 직종란이 있었다. 담당자가 화면을 스크롤했다. Forward Deployed Engineer 항목은 없었다. 담당자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냥 IT 협력업체라고 쓸께요”

FDE는 뭐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2. 대기
출입증 발급까지 3주가 걸렸다. 매주 문의하면 같은 답이 왔다. “곧 됩니다” 담당 부서가 한 번 바뀌었다. 서류를 새로 냈다.

FDE가 내부망 접근권을 얻기 전 필수 보안교육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교육 시스템은 내부 직원 번호가 있어야 로그인이 됐다. 외부인은 교육을 들어야 계정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교육은 어떻게 듣냐고 물으니, 계정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김00이 교육자료 PDF를 메일로 보내주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본 자료는 외부 반출 금지”

교육을 모두 이수하자 다시 2주가 지났다. 그리고는 같은 내용의 서약서를 네 번 썼다. 정보보안 서약서, 개인정보보호 서약서, 외부용역 보안서약서, 전산망 이용자 준수서약서. 네 장 모두 같은 문장으로 끝났다.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

어떤 권한을 주는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1. 자리
    FDE는 그렇게 매일 빈 책상에 앉았다. 사람들은 그를 저기 앉아계신 분이라고 불렀다. 회의에는 초대되었다. 회의록에는 이름 옆에 FDE라고 적혔다. 아무도 그게 뭔지 몰랐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어느 날 의견을 낼 기회가 왔다. FDE가 데이터 접근 권한과 업무 범위를 먼저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처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기획예산팀장이 말했다.

“내부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원장에게 올라가는 주간보고서에 새 항목이 생겼다.

AX 추진현황: FDE 상주 1개월째, 관계부서 협의 진행 중.

원장은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되고 있구나.

FDE는 어느 날 "입원환자 수"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부서마다 숫자가 달랐다.

원무팀: 청구 기준 입원
의무기록팀: 퇴원 요약 기준 입원
전산팀: 병상 배정 기준 입원
기획팀: 경영평가 제출 기준 입원
누군가 말했다.

“어떤 숫자가 맞는지가 아니라, 어디에 제출할 숫자인지가 중요합니다.”

  1. 접근
    결재시스템 접근 신청서를 냈다. 승인권자가 서류를 넘겨보며 말했다.

“IT 용역 직원은 결재시스템 승인이 안 됩니다”

FDE 등급이라는 게 규정에 없었으므로, 영원히 안 될 거라는 뜻이었다.

자료가 필요할 때마다 김00에게 부탁해야 했다. 그는 자기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대신 뽑아주었다. 그는 이미 몇 년째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의 요청을 대신 처리해온 사람이었다.

FDE는 익명화 EMR 데이터 샘플 100건만 요청했다. 담당자는 "데이터 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심의위원회는 분기별로 열렸다. 지난 분기 회의는 위원 과반 미달로 취소되었다. 다음 회의 안건 마감은 이미 끝났다.

"그럼 다음 분기인가요?"
"안건으로 올라가면요."
"안건으로 올리는 건 누가 하나요?"
"소관 부서에서 검토해야 합니다."

  1. 검토
    FDE는 부서 간 공유폴더 접근 권한을 요청했다. 팀장이 말했다.

"내부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입니다."

2주 뒤 다시 물었다. 같은 답이 왔다. 한 달 뒤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건 이미 검토 끝났다고 들었는데요"라고 했다. 팀장에게 다시 확인했다.

"아직 내부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FDE는 이 문장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질문을 끝내는 명령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았다.

  1. 감사
    FDE는 업무 흐름을 파악하려고 결재 승인 단계가 적힌 화면 캡처를 요청했다. 담당자가 정색했다.

"그건 개인정보보호 감사에 걸릴 수 있습니다."
"이름을 가리면 됩니다"
"그래도 내부 시스템 화면이잖아요."
"그럼 화면 구성만 적어주실 수 있나요?"

담당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내부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1. 시연
    원장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했다. FDE는 접근권 없이 대시보드 시안을 만들었다. 데이터가 없었다. 임시 숫자를 넣었다. 그래프 제목은 그럴듯했다.

AI 기반 병상 운영 효율화, 예측형 재원일수 관리, 환자경험 통합 인사이트.

시연 당일, 원장이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우리 병원 데이터인가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팀장이 말했다.
“현재는 개념검증 단계입니다”
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념검증. 좋은 말이었다.

전문지 인터뷰에서 원장이 말했다.
“우리 병원은 실리콘밸리식 FDE를 도입해 AI 전환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FDE는 실제로 상주하고 있었다. 그가 6개월째 결재시스템 계정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터뷰에 들어가지 않았다.

  1. 시계
    김00과 FDE는 조금씩 손발이 맞아갔다. 그는 어떤 서류를 어디로 넘기면 빨리 처리되는지, 어느 부서 담당자에게는 어떤 말투로 부탁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6개월째, 처음으로 뭔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는 다음 달 만료예요.” 김00이 어느 날 무심하게 말했다.
FDE가 “뭐가요?”라고 물었다.
“계약이요. 2년이거든요. 연장 안돼요.”
FDE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 인수인계
    김00이 마지막 출근을 했다. 대체 인력이 왔다. 신입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다. FDE는 EMR 접근권 협의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FDE는 이제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가끔 복도에서 원장과 마주쳤다. 원장은 그때마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한 번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 병원 AI로 많이 좋아졌나요?”
FDE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네,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원장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걸어갔다.

  1. 퇴장
    계약 마지막 날, FDE는 짐을 쌌다. 출입증을 반납했다. 반납대장에 적혔다. 전산협력업체 직원 퇴사로 인한 반납.

마지막 산출물은 표지가 화려한 보고서였다. AX 도입 컨설팅 결과보고서. 병원 로고와 인포그래픽이 들어갔다. 본문은 세 페이지였다. 결론은 한 줄이었다.

"단계적 확대가 필요함."

새로 온 신입 직원이 그 보고서를 프린트해서 서가에 넣었다. 캐비넷을 열자 비슷한 표지의 보고서가 몇 권 더 있었다. 전문위원, 컨설턴트, 위원회, 그 전의 또 다른 누군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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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il Yoon 웃프네요 ㅋㅋㅋㅋㅋㅋ 5d ago
Leo Kim 코미디 단편영화 한편 같음 4d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