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동 전쟁: 이기고도 지는 이유]
미국은 중동에서 전쟁을 잘 시작하는 나라다. 끝내는 법을 모를 뿐이다.
걸프전, 이라크 침공, 아프가니스탄—미국은 매번 이겼다. 그리고 매번 더 깊은 혼란을 남기고 돌아왔다. 군사적 승리가 정치적 실패로 귀결되는 이 패턴은, 중동의 역사와 문화적 토양을 이해하지 못한 채 힘만으로 질서를 만들려 했을 때 치르게 되는 필연적 대가에 가깝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직후, 바그다드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 분대급 병력이 우리 대사관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도심에서는 대규모 병력이 오히려 표적이 된다. 그래서 미군은 8명에서 13명 안팎으로 쪼개져 골목을 정찰했다.
그들은 전투복 차림에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물 몇 모금을 마시더니 곧 다시 떠났다.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긴 병사도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 눈빛은 분명했다.
"This is not my war."
세계 최강의 군대가 이긴 전쟁 한복판에서, 그들은 무엇을 향해 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중동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지역의 질서는 국가라는 틀보다 부족과 종파, 그리고 수백 년의 관습 위에 뿌리내리고 있다. 독재자 하나를 제거해도 그 아래 촘촘히 얽힌 부족과 종파 질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바트당을 해체하며 권력 공백을 만들었고, 그 공간을 알카에다가 채웠다. 그것이 IS로 이어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을 버텼지만 미군이 떠나자 탈레반은 열흘도 안 돼 돌아왔다.
외부에서 이식된 질서는 외부의 힘이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단순한 진실을, 미국은 번번이 외면했다.
리비아는 그 진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카다피는 분명 독재자였다. 그러나 그의 치하에서 리비아 사람들은 적어도 생계는 걱정이 없었고, 하나의 나라로 살아가고 있었다.
서방의 공습으로 그가 제거된 뒤 리비아는 동서로 갈라져 내전의 수렁에 빠졌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납치와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내가 그곳에 근무하던 시절, 테러범들이 우리 대사관 초소를 공격했다. 초소를 지키던 현지 경찰들이 그 자리에서 피살됐다.
그때 들었던 총소리는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회색빛으로, 머리를 관통하는 것처럼.
중동에서 현지인들을 만나며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 있다.
미국이 독재자를 제거해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반미도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미국이 가진 것들이었다. 풍요, 기술, 자유, 기회. 그 열망과 반감은 모순 없이 한 사람 안에 공존했다.
폭격을 맞은 땅에서 해방의 감사를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요구였다.
미국의 중동 개입이 순수한 안보 논리만은 아니었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역내 국가들의 우려는 번번이 무시됐다. 중동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정작 중동은 없었다.
미국이 이 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스라엘은 정치적 성역이고, 호르무즈 해협은 달러 패권의 혈관이며, 빈자리는 중국이 채운다.
구조가 사람을 움직인다.
이란은 그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혁명수비대는 개인에게 종속된 조직이 아니다. 지도자가 사라져도 시스템은 살아 움직이고, 이 땅에서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신앙의 증언이다.
"끝없는 전쟁을 끝내겠다"던 트럼프조차 이란 앞에서는 굴복만을 요구했다. 협상의 언어가 없는 자리에서 출구는 없다.
1953년 이란 쿠데타 개입이 1979년 이슬람 혁명을 낳았고, 이라크 침공은 IS를 만들었다. 역사는 늘 예상보다 늦게, 더 복잡한 방식으로 청구서를 내밀었다.
나는 가끔 바그다드의 병사들을 떠올린다. 물 몇 모금을 마시고 다시 골목으로 사라지던 젊은이들을. 그리고 리비아에서 들었던 그 총소리. 그 땅에 남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미국은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중동에서 전쟁을 끝내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리비아 내전 당시 우리 대사관을 지키던 경찰차. 어느 날 경찰은 이 차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미국은 중동에서 전쟁을 잘 시작하는 나라다. 끝내는 법을 모를 뿐이다.
걸프전, 이라크 침공, 아프가니스탄—미국은 매번 이겼다. 그리고 매번 더 깊은 혼란을 남기고 돌아왔다. 군사적 승리가 정치적 실패로 귀결되는 이 패턴은, 중동의 역사와 문화적 토양을 이해하지 못한 채 힘만으로 질서를 만들려 했을 때 치르게 되는 필연적 대가에 가깝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직후, 바그다드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 분대급 병력이 우리 대사관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도심에서는 대규모 병력이 오히려 표적이 된다. 그래서 미군은 8명에서 13명 안팎으로 쪼개져 골목을 정찰했다.
그들은 전투복 차림에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물 몇 모금을 마시더니 곧 다시 떠났다.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긴 병사도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 눈빛은 분명했다.
"This is not my war."
세계 최강의 군대가 이긴 전쟁 한복판에서, 그들은 무엇을 향해 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중동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지역의 질서는 국가라는 틀보다 부족과 종파, 그리고 수백 년의 관습 위에 뿌리내리고 있다. 독재자 하나를 제거해도 그 아래 촘촘히 얽힌 부족과 종파 질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바트당을 해체하며 권력 공백을 만들었고, 그 공간을 알카에다가 채웠다. 그것이 IS로 이어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을 버텼지만 미군이 떠나자 탈레반은 열흘도 안 돼 돌아왔다.
외부에서 이식된 질서는 외부의 힘이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단순한 진실을, 미국은 번번이 외면했다.
리비아는 그 진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카다피는 분명 독재자였다. 그러나 그의 치하에서 리비아 사람들은 적어도 생계는 걱정이 없었고, 하나의 나라로 살아가고 있었다.
서방의 공습으로 그가 제거된 뒤 리비아는 동서로 갈라져 내전의 수렁에 빠졌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납치와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내가 그곳에 근무하던 시절, 테러범들이 우리 대사관 초소를 공격했다. 초소를 지키던 현지 경찰들이 그 자리에서 피살됐다.
그때 들었던 총소리는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회색빛으로, 머리를 관통하는 것처럼.
중동에서 현지인들을 만나며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 있다.
미국이 독재자를 제거해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반미도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미국이 가진 것들이었다. 풍요, 기술, 자유, 기회. 그 열망과 반감은 모순 없이 한 사람 안에 공존했다.
폭격을 맞은 땅에서 해방의 감사를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요구였다.
미국의 중동 개입이 순수한 안보 논리만은 아니었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역내 국가들의 우려는 번번이 무시됐다. 중동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정작 중동은 없었다.
미국이 이 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스라엘은 정치적 성역이고, 호르무즈 해협은 달러 패권의 혈관이며, 빈자리는 중국이 채운다.
구조가 사람을 움직인다.
이란은 그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혁명수비대는 개인에게 종속된 조직이 아니다. 지도자가 사라져도 시스템은 살아 움직이고, 이 땅에서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신앙의 증언이다.
"끝없는 전쟁을 끝내겠다"던 트럼프조차 이란 앞에서는 굴복만을 요구했다. 협상의 언어가 없는 자리에서 출구는 없다.
1953년 이란 쿠데타 개입이 1979년 이슬람 혁명을 낳았고, 이라크 침공은 IS를 만들었다. 역사는 늘 예상보다 늦게, 더 복잡한 방식으로 청구서를 내밀었다.
나는 가끔 바그다드의 병사들을 떠올린다. 물 몇 모금을 마시고 다시 골목으로 사라지던 젊은이들을. 그리고 리비아에서 들었던 그 총소리. 그 땅에 남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미국은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중동에서 전쟁을 끝내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리비아 내전 당시 우리 대사관을 지키던 경찰차. 어느 날 경찰은 이 차만 남겨두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