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부터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교사 부족과 열악한 교육환경에 항의하며 시작된 시위가 벌써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제는 대학생과 교사, 노동조합까지 가세하면서 프랑스 사회 전체로 파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요 대선 주자들까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는데요.
시위는 지난 9월 중순 파리 근교 크레테유의 생텍쥐페리 고등학교에서 시작됐습니다. 이 학교는 새 학기가 시작됐는데도 프랑스어, 수학, 경제•법 교사가 각각 한 명씩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교감과 학교 간호사, 사회복지사도 부족했고, 장애 학생들을 지원하는 보조 인력도 모자랐습니다. 교사들은 이러한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정상적인 교육환경을 보장하라며 9월 17일 파업에 들어갔는데요. 이튿날 학생들도 학교를 봉쇄하며 함께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이 학교만의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프랑스 곳곳의 고등학교에서 교사 부족과 과밀학급, 낡은 학교시설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던 거죠. 시위 소식이 SNS를 통해 퍼지자 다른 학교 학생들도 잇따라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대학입시 제도에 대한 불만까지 결합하면서 시위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는데요. 특히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학생들의 분노가 더욱 커졌습니다. 지난 10월 6일에는 경찰 추산으로도 무려 26만 6천 명이 전국적인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프랑스에는 바칼로레아라는 대학 진학 자격시험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시험에만 합격하면 국립대학교에 진학할 권리를 대체로 폭넓게 인정받았는데요. 하지만 인기 학과에 지원자가 몰릴 경우 정원 부족으로 추첨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8년 마크롱 정부가 ‘파르쿠르쉬프’라는 새로운 대학입시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지원하면 대학 측이 고등학교 성적과 교사들의 평가, 지원동기서 등을 살펴보고 학생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방식입니다. 한국의 수시 학생부종합전형과 비슷한 점이 있죠. 그런데 학생들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이 제도의 불공정성과 불투명성 때문입니다.
새로 도입된 제도로 학생을 뽑을 때, 대학 측은 지원 학생의 출신 고등학교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는데요. 프랑스에도 부자 동네의 명문 고등학교가 있고, 교사조차 부족해 수업 결손이 발생하는 가난한 지역의 고등학교가 있지 않겠어요. 출신 고교의 명성이 입학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겁니다. 실제로 올해 2월 프랑스 의회는 차별의 가능성이 있다며 출신 고등학교 정보를 대학에 제공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게다가 대학마다 선발기준이 제각각이고, 학생들은 자신이 왜 낮은 순위를 받았는지 충분히 알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위에서는 파르쿠르쉬프를 통한 선발을 폐지하고 대학 정원을 늘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프랑스 하면 뭔가 진보와 혁명의 이미지가 강한 나라다 보니 교육에서도 평등을 추구한다고 막연히 생각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실제 현실은 사뭇 다릅니다. 프랑스에는 일반 대학과 별도로 ‘그랑제콜’이라는 엘리트 교육기관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세계적인 이공계 명문 에콜 폴리테크니크라든가 파리 고등사범학교가 대표적인데요. 참고로 두 학교 모두 국립입니다. 일반 국립대학교는 바칼로레아 합격자들에게 입학 기회를 폭넓게 열어놓았지만, 그랑제콜은 오래전부터 엄격한 경쟁시험을 통해 소수의 학생들을 선발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엘리트 교육기관에 부유한 계층의 자녀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진학합니다. 2021년 발표된 프랑스 공공정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그랑제콜 학생의 64%는 부모가 기업 간부나 경영자, 전문직 등에 종사하는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반면 부모가 생산직 노동자이거나 직업이 없는 가정 출신은 9%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일반 국립대학교까지 성적에 따른 선발 경쟁이 강화되니 교육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더욱 커진 것이죠.
2015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의 주요 40개 대기업 경영진 자리 가운데 무려 45%를 에콜 폴리테크니크, 명문 경영대학 에이치이씨(HEC) 파리, 국립행정학교, 이렇게 세 학교 출신들이 차지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엘리트 지위가 대물림된다는 사실입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스테판 방브니스트가 100년 넘는 그랑제콜 졸업생 자료를 분석했는데요. 그랑제콜 졸업생의 자녀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도 명문 그랑제콜에 들어갈 가능성이 무려 80배나 높았습니다. 심지어 그랑제콜을 졸업한 사람들끼리 비교해도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지냈다면 자신도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될 가능성이 37배 높았습니다. 그러니까 명문학교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부모의 배경이 크게 작용하고, 같은 명문학교를 졸업해도 집안에 따라 출세할 기회가 크게 달라지는 겁니다. 프랑스에서 교육 불평등이 단순히 대학입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특권의 대물림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아무리 입시 제도와 교육 현실에 불만이 있다지만, 고등학생들이 이렇게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고 거리로 나선다는 게 놀랍습니다. 프랑스 학생들은 어떻게 그렇게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걸까요. 이와 관련해서 영국 가디언에 상당히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습니다. 글을 쓴 사람은 영국인이지만 프랑스에서 성장한 키티 세이어스라는 청년인데요. 자신이 경험한 두 나라의 차이를 설명한 겁니다. 프랑스에서는 12살 무렵부터 프랑스혁명을 배우고, 중고등학교에서 1968년 학생운동의 역사도 반복해서 배운다고 합니다. 또 11살 무렵부터 시민교육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토론하는 법을 배우는데요. 국가가 시민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시민은 국가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도 배운다는 겁니다.
더욱 흥미로운 건 부모들의 태도입니다. 이번 시위에서는 학부모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학생들을 보호하고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는데요. 칼럼에서는 이 부모들 역시 젊은 시절 학생 시위를 경험한 세대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결국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실제 거리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이 칼럼의 해석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학생들의 시위 문화가 발달해 있다고 해도,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시위를 조직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닐 텐데요. 이번 시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조합연합', 약칭 USL이라는 전국적인 학생조직입니다. 2023년에 여러 학생운동 단체의 활동가들이 모여 설립했는데요. 회원들이 회비를 내고, 지역별 조직과 전국 지도부를 갖추고 있습니다. USL은 회원이 약 3,500명이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반자본주의와 반파시즘, 페미니즘, 생태주의 등을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좌파 성향의 학생조직입니다. 이번 시위에서는 대학생 단체와 연대해 전국적인 공동행동을 조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USL 대표인 리야드 라니는 불과 19살입니다. 최근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인데, 지난 10월 2일 교육부 장관을 직접 만나 학생들의 요구를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와의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15일에는 협상 도중 퇴장하고 총리와 직접 대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USL이 모든 시위를 지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시위가 SNS를 통해 확산됐고, 여기에 USL 같은 기존 학생조직들이 결합하면서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한 겁니다.
이번 시위에서 프랑스 경찰이 고등학생들을 상당히 강경하게 진압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8일 파리 근교에서 14살 에덴이라는 학생이 경찰이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한 최루탄에 얼굴을 맞았습니다. 턱뼈가 두 군데나 부러지고 치아가 여러 개 부서졌는데요. 담당 경찰관은 공권력에 의한 중상해 혐의로 정식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건은 10월 5일 프랑스 북부 랑스에서 발생했습니다. 15살 고등학생이 경찰의 진압용 폭음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왼손을 잃은 겁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학생 시위 현장에서 해당 수류탄의 사용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는데요. 실제로 10월 13일 기준으로 경찰 감찰기구가 수사에 착수한 경찰 폭력 의혹만 36건에 달합니다. 물론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을 공격하고 학교시설을 파손하는 등 폭력행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시위의 대부분이 평화적으로 진행됐는데도 경찰이 미성년자들에게 과도한 무력을 사용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시위가 이렇게 확산되면서 프랑스 정부도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데요. 프랑스 정부는 교사가 부족한 학교에 대체 교사 3천여 명을 긴급 배치하고, 대학입시 제도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시위가 내년 대선의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급진좌파 대선 주자인 장뤼크 멜랑숑은 직접 시위 현장을 찾아 학생들을 격려하고 대학입시 제도 폐지와 16세 선거권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반면 극우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은 시위 과정의 폭력행위를 비판하며 학교시설을 파손한 학생이나 그 부모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처하는 가브리엘 아탈 전 총리는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해 ‘청년을 위한 협약’이라는 새로운 교육 공약까지 제시했습니다. 결국 고등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 요구가 프랑스의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치세력들이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는 쟁점으로 발전한 겁니다.
미국의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매 세대마다 새롭게 태어나야 하며, 교육은 그 탄생을 돕는 산파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배우고, 자신들이 마주한 부당한 현실에 직접 목소리를 내며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정부를 움직이고,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중요한 의제로까지 발전하고 있는데요. 민주주의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알고 부당한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을 그런 시민으로 길러내고 있는지, 이번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 2026년 10월 17일 뉴스토마토 <김창현의 창>에 출연해 한 얘기를 요약했습니다. 방송을 다시 볼 수 있는 인터넷 주소를 댓글에 남기니 참고하세요. **
감사합니다.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