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대한 학생들의 경험 서술에서 또 하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 중 하나.
수업을 듣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어서 AI에게 물어보았다 -> AI가 알기 쉽게 설명해주어서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 그런데 나는 분명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걸로 시험을 보거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하니 AI가 가르쳐준 말 이외에는 다른 어떤 설명도 할 수 없더라. 이런 일화를 고백하는 학생들이 대폭 늘었다.
이런 것과 비슷한 현상을 몇년 전부터 시험시간에 절감하고 있다. AI가 보편화되기 전만 해도 보통 서술형 시험문제를 내면 학생들 가운데 1/3 정도는 2~3페이지를 꼬박 채워가면서 쓰곤 했다. 학생 수가 70명이면 답안지는 140장 정도는 준비해야 했고, 그나마도 간혹 모자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경향이 뚝 끊겼다. 이제는 70명이면 70장만 준비해도 큰 문제가 없다. 누구도 한 장 이상을 안 쓴다. 아는 거 다 써보라고 만들어준 문제에 대해서도 3~4줄, 한 문단을 넘어가는 학생이 드물다. 읽어보면 말 자체는 맞다. 내가 수업 시간에 설명했던 내용도 맞고, 요점도 얼추 짚었다. 그런데 그게 다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개념들은 썼는데, 정작 이 학생은 이 개념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서 풀어낸 걸까, 라는 의문이 한 가득.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일부 문항에 백지를 내는 학생이 대폭 늘었다. 잘 모르는 문제도 얼기설기 뭐라도 써서 소설인지 답안지 알 수 없는 글을 주저리주저리 써내는 학생이 갑자기 '귀해졌다'. 이런 학생 만나면 오히려 반가울 지경. 모르는 문제 나와도 뭐라도 써야 부분점수라도 주니까 하다못해 애국가 가사라도 쓰라고 해도 안 먹힌다. 그냥 백지를 낸다.
나는 이게 AI의 영향이라고 퍽 확신하는 편이다. 그거 말고는 딱히 변수가 없다. 수업 시간에 이리저리 거닐(?)면서 설명하다가, 학생들이 내가 준 강의자료를 AI에게 물려서 정리하는 걸 여럿 봤다. 혹자는 내가 말하는 내용을 녹음해서 AI에게 정리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AI가 만든 강의노트를 본 적도 있는데, 정말 깔끔하게 잘 되어 있더라. 이걸로 공부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본인의 언어로 자기가 이해한 것을 설명하라고 하면 난감해진다.
이제는 학생들도 '딸깍'에 대한 위험성은 인지한다. 인지하지만 급하고 피곤하니까 쓰는 정도이고, 쓰면서도 당사자들도 불안함 내지는 불만을 느낀다. 그런데 딸깍이 아니라, 나름대로 개념 이해하겠다고 AI에게 질문도 하고 조언도 구하는 학생들도 함정에 빠진다. 본인은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AI가 '해설해준 문장'을 이해한 것일 뿐, 정작 AI가 그런 해설을 내놓기까지의 과정은 보지 않는다. 왜 이렇게 해석했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잘 이해가 안 가니까 내가 이해해보려고 발버둥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AI한테 핀포인트로 물어보는 게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달라고 '학습'을 위탁해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이게 과제 딸깍보다 훨씬 위험하다. 어느 순간 본인이 안되는 대로 머리 굴려가면서 시행착오 끝에 불완전하게나마 이해라는 걸 하는 과정 자체가 '비효율'적인 것처럼 변해버렸다. 요즘은 심지어는 학생이 아니라 기성 연구자들조차도 이런 행동을 한다. 어느 분야든 논문 투고 수가 부쩍 늘었다는 건 AI를 활용한 새로운 방법론이 영역을 확보하기 때문도 있겠지만, 적잖은 부분에서 자기가 직접 읽거나 공부해보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아는 척' 쓸 수 있는 여건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전공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종종 AI에게 이것저것 묻고는 하는데, 답을 읽다 보면 이런 거구나 싶으면서도 정말 이런 거 맞나? 라는 감각에 부딪히면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낀다.
AI가 인지의 영역을 확장시켜준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흔히 접하지만, 그게 과연 제대로 된 확장인지, 아니면 확장의 틀을 뒤집어쓴 거품인지는 바늘로 찔러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모르는 걸 모르는 상태로 놔두는 것보다, 안다고 믿는 상태로 바뀌는 게 더 무서운 일이다. '앎'을 AI에게 위탁한 수많은 지성 아닌 지성들이 각자 AI의 언어로 대결하면서 담론 아닌 담론을 형성하는 광경들을 종종 목격한다. AI가 쓴 글이지만 자기가 지시해서 만들었고, 만든 글을 읽어보며 검토도 했으니 자기 글이라고 주장하는 '어른'도 대폭 늘었다. 어느 순간 이게 디폴트가 되고 있는 건가 싶어서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