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의 마음 읽기] AI, 신, 무당
이은혜 글항아리 대표
요즘 개인들이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막대한 구조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물론 인공지능(AI)인데, 그것은 기술이기도 하고 역사이기도 하다. 출판계에는 바둑계보다 AI가 10년쯤 늦게 도착했지만, 편집자로서 생존 방법을 찾기도 전에 내가 몸담은 출판사의 모기업 지분 상당량이 AI 스타트업에 매각될지 모른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다. 예상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빠르게 나와 주변 출판인들은 AI에 얽혀 들어가고 있다.
신과 같은 AI에 맞서 생존하려면
지적 정확성과 예술적 감성으로
AI 시대의 모순, 성찰할 수 있어야
김지윤 기자
파도에 부딪힌 자는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생존법을 동시에 취할 수 있다. 하나는 정면승부이고, 다른 하나는 회피다. AI 기업이 출판사의 텍스트를 단기간 내에 빨아들여 몸집을 불리려 할 때 출판사의 소유관계와 경영 방식은 지각변동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 앞에서 1인 출판처럼 보폭을 좁히면서 끈질기게 생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책을 기획·편집하는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면서 저자와 역자의 미래까지 담보하는 규모의 산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러는 한편 회피처럼 보이는 전략도 필요하다. 즉, AI와 거리를 두면서 비물질적 측면을 파고드는 일로, 바로 읽기와 쓰기에 몰입하는 것이다.(AI처럼 물질적인 것은 오히려 뿌리가 없고, 비물질적인 것은 뿌리와 형태가 깊다)
일부 사람에게 그렇듯 내게도 AI 시대를 건너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은 공부다. 지난주에 읽은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에는 위의 회피 전략을 옹호해주는 듯한 구절이 나온다. 내용인즉슨,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처럼 문답식 토론을 하는 이들은 탐구 과정에서 점점 자기 자신을 싫어하게 되고, 그런 염오스러운 자기로부터 벗어나고자 철학으로 피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철학 하는 이들은 가장 성공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는’ 길을 얻는다. 다시 말해, 이들은 현시대의 기본 원리가 된 것(AI)으로부터 멀리 돌아가면서 오히려 내면의 커져가는 빛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다. 인류학의 거장 웹 킨은 로봇과 AI를 현명하게 대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접신한 무당과 점쟁이를 현지조사한 사례들을 살피고, 소나 말과 소통하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들을 탐험한다. 시야를 종적·횡적으로 넓힌 그는 동물을 근(近)인간, 로봇을 준(準)인간, AI와 귀신과 무당을 초(超)인간으로 구분한다. 현재 AI가 신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신 대접을 해주기 때문인데, 이런 태도는 인간이 불가해한 존재인 귀신이나 무당을 대할 때 보이는 자세와 같다.
킨이 역사의 긴 여정을 오르내리면서 AI 시대에 대해 내린 결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글이라는 도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작가와 독자가 내면화한 비물질적 측면이다. 글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만 막힘없이 쓰고 읽을 수 있다. 글은 내가 아닌 타인이 발명한 인지적 도구이지만 나의 인지적 기관의 일부가 된다.”
세계와 AI로 연결될 때 우리가 비물질적인 언어의 주도권을 잃는다면 세계의 사물들 역시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이다. 빠름(기술의 속도)에 대응하는 것은 정확성일 때가 많고, 물질에는 추상적인 것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로라 라이딩을 비롯한 뛰어난 작가와 학자들은 몸소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인류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고도의 지적 정확성과 예술적 성취다.
AI가 출판산업을 지배하게 될 미래에 적응하는 것과 그로부터 떨어져 저항의 힘을 키우는 것은 동시에 수행될 수 있다. 그 모순된 힘을 분별하며 적응하는 것이 우리를 지탱케 한다. 아마 우리는 그 두 상반된 작용에 달라붙어 한편으로는 휩쓸려 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 기억, 존재에 대한 믿음, 도덕성 같은 것을 붙들게 될 것이다.
웹 킨이 동물이나 AI·신을 사고하면서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인간의 도덕적 상상력이 얼마나 넓어질 것인가이다. 좁고 가파른 현재를 통과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은 대개 동물과 신 그리고 로봇과 인공지능처럼 모순된 것들에 인간이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며 그것들을 윤리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대표
AI가 출판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지적 정확성과 예술적 감성으로 AI 시대의 모순을 성찰해야 한다. 출판사는 AI와의 경쟁에서 정면으로 맞서거나, 읽기와 쓰기에 몰입하는 방식으로 회피하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 웹 킨은 AI를 신처럼 대하는 태도가 인간의 불가해한 존재에 대한 태도와 유사하다고 보며, 역사적 관점에서 AI를 이해해야 한다. 글의 핵심은 비물질적 측면이며, 기술의 속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확성과 예술적 성취가 중요하다. 인간의 도덕적 상상력이 AI와 같은 모순된 존재에 대한 이해를 통해 발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