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구에서 발생한 28주 쌍둥이 산모 사건을 두고 환자의 '선택'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다. "왜 무리하게 장거리 이동을 했느냐"는 성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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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조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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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구에서 발생한 28주 쌍둥이 산모 사건을 두고 환자의 '선택'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다. "왜 무리하게 장거리 이동을 했느냐"는 성토가 이어진다. 나는 응급실에서 수많은 인간군상을 만났다. 살인마도 있었고 자살 시도자도 있었다. 제삼자가 보기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멍청한 기전으로 실려 오는 환자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았든, 어떤 무모한 선택을 했든, 내 앞에 도착한 환자라면 조건 없이 살려놓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자 존재 이유다. 아픈 환자를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의료는 국민의 그 어떤 '어리석은 선택'조차 품어낼 수 있을 만큼 견고한 사회적 최후 안전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잃은 산모를 비난하기보다, 의사로서 안타까움을 먼저 전하고 싶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환자의 '과거'를 심판하는 판사가 아니라, '현재'의 사투로 '미래'를 열어주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 사건만 터지면 정치권은 "가까운 병원이 무조건 받게 하라"는 대책을 내놓는다. 현장을 모르는 이들의 망상이다. 신생아 중환자실(NICU)이 없는 병원에 산모를 밀어 넣는 건 치료가 아니라 '방치'다. 재이송을 위한 골든타임만 길바닥에서 버리게 만든다. 이번 케이스의 수용 난이도는 ‘극상’이었다. 28주 미만, 1kg 미만의 아기가 태어난다면 분만실, NICU 두 자리, 수술실, 산부인과와 소아과 전문의등이 '동시'에 스탠바이 되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환자를 위해서라도’ 응급실은 '거절' 버튼을 눌러야 한다. 문제는 대한민국 필수의료가 여유분을 남겨둘 만큼 한가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환자는 넘친다. 그런 측면에서 대구 사건은 어쩌면 필연이다. * 응급실은 이미 '깜깜이'가 되었다. 응급치료는 어디나 똑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진료 기록 없는 고위험 환자를 받는 것은 눈을 감고 수술대에 오르는 것과 같다. 환자 상태를 모른 채 무작정 뛰어들다간 그 행위의 결과로 무려 인간의 목숨을 지불하게 된다. 따라서 정상적인 의사라면 최선의 진료가 가능한 곳으로 환자를 보낸다. 그것이 진정 환자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응급실이 그 '최선의 곳'이 어디인지 실시간으로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각 임상과의 전문성이 중시되면서 응급실조차 세부 전문의로 분화되었다. 정부와 각 임상과는 앞다투어 특화 센터를 만들며 응급실을 탈피했고, 그 결과 응급실은 정보의 고립 상태인 '깜깜이'가 되었다. 배후 진료과가 하나의 독립된 조직으로 분화되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없게 된 결과, 응급실은 환자 수용 허가를 받기 위해 각 과에 전화를 돌리는 '셔틀'로 전락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각 병원의 분만실과 NICU의 실시간 수용 역량은 응급실과 유기적으로 공유되지 않았다. 119 구급대원은 일일이 전화를 돌려야 하는 원시적인 연계 방식에 의존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골든타임은 녹아내렸다. 응급실은 이미 바이패스되고 있는데, 대중은 '응급실 뺑뺑이'라는 레이블을 붙여 우리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재량권도 정보도 주어지지 않은 응급실에 쏟아지는 비합리적인 비난이다. *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사회는 의사에게서 ‘모험할 용기’마저 뺏어갔다. 환자에게 최상의 선택이 멀리 있는 큰 병원일지라도, 이송 과정의 위험이 너무 높다고 판단될 때 의사는 "지금 내 진료가 차선일지라도 최선"이라며 모험을 걸어볼 수 있다. 일단 환자를 받아 안정화시킨 후 이송하면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역은 거대한 암묵지다. 일도양단의 칼날이 작동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내딛고, 반대로 누군가는 지극히 보수적인 선택을 한다. 하지만 배후 진료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선’의 진료를 했다가 결과가 나쁘면, 우리 사회는 기다렸다는 듯 가혹한 법적·윤리적 잣대를 들이민다. 그 결과 의사의 도전은 '목숨을 건 도박'이 되었고,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않게 되었다. 암묵지는 폭넓은 재량권이 핵심임에도, 우리 사회는 늘 단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처벌로 강화할수록 의사는 더욱 보수적인 판단 뒤로 숨게 된다. 어떤 기준을 정해 강요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거대한 착각이다. 전문가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 해결책은 명확하다. 첫째, 배후 진료(산과, NICU 등) 전체의 확충이다. 산과와 신생아 파트에 집중하는 현재 대책도 틀렸다. 특정 과만 땜질하면 다음번엔 반드시 다른 분야에서 사고가 터진다. 필수의료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산모 수용에 신생아실이 연동되듯 말이다. 어느 한두 과가 아닌, 필수의료 전체를 함께 부양해야 한다. 둘째, 응급실이 실질적인 컨트롤 센터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배후 진료가 불가능하면 응급실 수용이 불가능하다. 반대로 배후 진료가 가능해도, 응급 체계가 무너지면 환자는 길 위를 떠돌게 된다. 외과 수술실에 마취과가 다 할당되면 산부인과 수술이 불가능해지고, 심정지 환자로 가득 차면 산모는 응급실에 진입조차 할 수 없다. '일단 수용 후 안정화'와 '최종 목적지 직행' 중 무엇이 옳은지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총괄적 판단이 작동하려면, 실시간 정보가 응급실로 집중되고, 더 나아가 지역 전체에서 한 번 더 통합되어야 한다. 셋째, 빠르고 안전한 이송망을 갖추어야 한다. 지역 내 자원이 모든 환자를 커버할 수는 없다. 감당 못 할 재난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때 환자에게 최선의 대안을 얼마나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가. 그것이 시스템의 핵심이다. * 이번 사건이 대구가 아닌 광주였다면? 광주라고 해서 마법처럼 환자를 다 받아줬을 거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당시 자원 상황에 따라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대답할 수 있다. '시간의 허비'는 최소화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FLT를 통해 지역 내 해결 가능 여부를 즉각 판단해 '광주 수용 불가'를 선언하고,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최종 수용 병원을 컨택했을 것이다. 119는 지체 없이 수도권으로 이송을 시작했을 것이며, 환자가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은 최소한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시스템의 효율성이다. 배후 진료 역량과 정보망 강화까지 갖추어진다면 이 시스템은 한층 더 빛을 발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한 걸음 더 자신 있게 내디딜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