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휴양지 리조트의 부사장님이 한국에 와서 지갑을 가장 크게 연 곳은 백화점 명품관도, 명동 올리브영도 아닌 옹기 가게였다. 외국인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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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Iggy Dongic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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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휴양지 리조트의 부사장님이 한국에 와서 지갑을 가장 크게 연 곳은 백화점 명품관도, 명동 올리브영도 아닌 옹기 가게였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하루짜리 짧은 투어를 하나 했는데, 하면서 배우고 느낀 게 참 많았다. 그리고 그 끝에 새삼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우리한테는 너무나 당연해서 그냥 지나치는 정말 가장 한국적인 것들에 지금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 보통 투어를 받으면 여행사에서 일정을 확정해 준다. 경복궁에 갔다가 인사동에 가고, 경주에서는 대릉원 가고 불국사 가고, 이런 식이다. 나는 그 일정에 맞춰 준비하면 된다. 근데 가끔은 내가 일정을 직접 짜야 하는 투어가 들어오기도 한다. 이번이 그랬다. 손님은 미국인 중년 여성 두 분. 한국에서 열리는 미팅에 참석하러 왔는데 하루가 비어서 투어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런 경우 나는 손님의 왓츠앱 연락처를 받아 직접 연락한다. 어떤 투어를 원하는지 알아야 일정을 짤 수 있으니까 물었다. "이번 투어에서 어떤 걸 경험하고 싶으세요?" 그랬더니 답이 이렇게 왔다. 한국 불교를 느낄 수 있는 사찰에 가고 싶다. 서울 밖으로 좀 나가 보고 싶다. 현지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 로컬의 삶도 보고 싶다. 가능하면 공예품 시장에 가서 뭘 직접 만들어도 보고 구매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연히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다. 어떤 투어든 좋다. 인사동, 명동 같은 구체적인 관광지 언급 없이 굉장히 두루뭉술하다. 이번 투어는 준비부터 난이도가 있다. 고객의 니즈에 맞게 일정부터 짜야 하니까. ㅡㅡㅡ 일단 당일치기라는 제약이 있다. 사찰에 로컬 문화에 공예까지 다 담으려면 사실 경주 같은 데가 딱인데, 하루로는 못 간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옵션을 두 개 드렸다. 첫 번째는 서울 시내 투어. 사찰은 길상사로 잡았다. 조계사가 한국 불교에서 중요한 절이긴 한데 도심 한복판이라 고즈넉한 전통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좀 아쉽다. 길상사는 조용하고 오히려 산사 같은 느낌이 난다. 그다음에 북촌 한옥마을, 그리고 인사동. 인사동에서는 공예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고 도자기 같은 전통 공예품도 살 수 있다. 시간이 되면 바로 옆 익선동의 한옥 카페에서 차 한잔하고 저녁은 광장시장에서. 이렇게 하나. 두 번째는, 그래도 서울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하니 고민을 좀 했다. 사찰도 봐야 하고, 로컬 문화도 느껴야 하고, 공예도 해야 하고, 거기다 거리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나온 답이 수원이었다. 수원에는 일단 수원화성이 있다. 그 옆에 화성행궁이 있고, 그 앞 행궁동 골목에는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공방들이 있다. 그리고 근처에 용주사라는 절이 있다.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수원화성을 건축한 이유 중 하나인데, 용주사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라 수원화성이랑 이야기가 딱 연결된다. 여기에 하나 더, 수원 바로 옆 용인에 한국민속촌이 있다.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싶다고 했으니 민속촌을 제일 먼저 가는 걸로 해서 일정을 짰다. 서울? 수원? 손님들은 어떤 투어를 선택했을까?... 수원이었다. 나도 거기에 맞춰 투어 준비에 들어갔다. 투어 전부터 약간 긴장이 됐다. 듣기로 한 분은 바이스 프레지던트, 우리로 치면 부사장님이나 전무님쯤 되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그분을 수행하는 분인데 이분도 우리로 치면 부장급쯤 되는 직책이 있는 분이었다. 아, 이거 요구 사항이 많겠다. 뭔가 까다롭겠다. 걱정이 좀 됐다. 드디어 투어 당일 아침, 호텔 로비에서 두 분을 만났다. 처음 뵀을 때,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는데, 나를 위아래로 쓱 한번 스캔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가이드는 어떤 가이드일까. 잘하는 애야? 오늘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한번 시험을 해 봐야겠는데. 어디 두고 보자. 약간 그런 느낌, 센 언니들ㅠ 그래서 나도 순간 당황해서 살짝 어리버리했다. 다행히 기사님이 정시에 딱 도착해 주셔서 8시 반에 출발했다. 민속촌까지 한 시간 반쯤 걸린다. 가는 차 안에서 한국엔 어떻게 왔는지, 어제는 뭐 했는지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오늘 일정도 설명하면서, 그렇게 초반에 천천히 긴장을 풀고 서로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민속촌이 10시에 문을 여는데 딱 맞춰 도착했다. ㅡㅡㅡ 자, 이제 민속촌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여기저기 설명해 드려야지 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입구에 들어가서 얼마 안 가 왼쪽 편에 옹기생활관이라는 곳이 있다. 김치 담고 된장 담는 우리 전통 항아리, 옹기를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하는 공간이다. 부사장님이 그러셨다. 내가 도자기에 관심이 정말 많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도자기를 수집하고 있다. 저기 잠깐 들렀다 가자. 두 분이 옹기를 보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거기가 항아리만 있는 게 아니라 옹기 만드는 흙으로 빚은 초가집도 있고, 조선시대 주막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인형 같은 것도 있다. 왜, 흰 앞치마 두른 주모님들 있잖은가. 거기에 완전히 꽂혀서 물건을 하나하나 샅샅이 살펴보며 정말 많이 사셨다. 근데 알고 보니 그 가게 사장님이 밖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분이 아니라 그 작품들을 전부 손으로 직접 만든 분이었다. 사장님이 아니라 장인이라고 해야겠다. 바로 옆에 실제로 옹기를 만드는 제작소가 있고, 거기서 관광객 대상으로 접시나 항아리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하고 있었다. 두 분이 하고 싶다고 하셔서 즉석에서 체험까지 하게 됐다. 장인의 지도를 받으며 두 분이 옹기를 빚고, 나는 옆에서 열심히 통역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옹기가 완성됐는데, 도자기라는 게 말리고 굽는 과정이 또 필요하다.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해서 완성품은 내가 먼저 소포로 받은 다음 이분들께 국제우편으로 보내 드리기로 했다. 옹기생활관에 잠깐 들르기로 했는데, 이런,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민속촌 투어를 시작했다. 양반집도 보고 초가집도 봤는데, 이미 옹기에 마음을 너무 많이 쏟아서일까. 빠르게 건물 여기저기를 다니며 쓱 훑어보고 사진 몇 장 찍고 "이 정도면 됐다, 다음 행선지로 가자" 하신다. 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때. 원래 다음 행선지는 수원화성이었다. 근데 오전 내내 지켜보니 이분들은 민속촌의 전통 건축물보다 도자기, 공예 쪽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런데 수원화성도 건축물인데. 그래서 제안을 드렸다. 도자기 같은 한국 전통 공예품을 더 보고 싶으면 인사동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서 이런 걸 많이 판다, 대신 인사동으로 가면 시간 관계상 수원화성은 못 간다. 그랬더니 바로 "오케이, 그래, 인사동 가 보자" 하셨다. 그래서 그 야심 차게 짰던 수원 일정은 결국 민속촌 하나로 끝났다. 투어라는 게 이렇다. 변수가 참 많다. ㅡㅡㅡ 인사동 가는 길에 점심을 먹어야 했다. 원래 저녁으로 잡아 놨던 광장시장을 점심으로 당겼다. 광장시장이 요즘 이런저런 이슈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 길거리 음식 문화를 한자리에서 보여 주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 그렇게 먹자골목을 구경하는데 순대도 있고 떡볶이도 있고, 두 분이 되게 흥미로워하셨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옆 골목으로 향했다. 이불이며 원단이며 파는 골목이다. 광장시장이 원래는 포목, 그러니까 옷감이랑 원단으로 유명한 시장이다. 그 골목에 들어선 순간 두 분의 쇼핑 본능이 다시 한번 팡 터졌다. 시작은 모시였다. 모시에 자수를 놓은 세로로 길쭉한 천을 파는 상점이었는데, 테이블보로 쓰거나 벽에 장식으로 걸어 놓는다고 한다. 부사장님이 그걸 몇 장 사셨다. 왜 사시냐고 여쭤봤더니 집에 손님을 초대해서 파티를 자주 하는데 거기에 테이블보로 쓸 거란다. 그 옆에 모시로 만든 컵받침 같은 조그만 기념품이 있었는데 그것도 잔뜩 사셨다. 그다음이 하이라이트다. 골목을 돌다가 승복 파는 가게를 발견했는데, 이번엔 부장님이 승복에 꽂혔다. 이 부장님이 약간 동양과 서양이 섞인 듯한 분위기가 있는 분이다. 겨울에 스님들이 입는 도톰한 승복, 약간 까끌까끌한 질감에 회색빛 도는 그 옷을 입어 보셨는데, 와, 진짜 깜짝 놀랐다. 너무 잘 어울리는 거다. 그래서 그것도 바로 구매. 끝이 아니다. 조금 더 가니 천연 염료로 염색한 옷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약간 개량 한복 느낌도 나는 옷들인데, 거기에 발끝까지 오는 긴 드레스가 하나 걸려 있었다. 한국인인 내가 봐도 이건 아무 데서나 못 보겠다 싶은 옷이었다. 굉장히 전통적이면서도 또 전통적이지 않은, 거꾸로 이분들에겐 아주 이국적으로 보이는, 되게 묘한 매력이 있는 옷. 부장님이 그걸 딱 보더니 바로 입어 보셨는데 핏도, 길이도, 색감도 그분의 분위기랑 정말 잘 맞았다. 부장님, 고민 없이 바로 구매하셨다. 마지막으로, 요즘 대만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그 이불 가게까지 갔다. 거기서 이불도 하나 사셨는데, 그 큰 이불을 공기를 쫙 빼서 조그맣게 압축해 포장해 주는 걸 보고 되게 신기해하셨다.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빈대떡집에 갈 수 있었다. 빈대떡에 떡볶이에 이것저것 시켜 놓고 막걸리도 한잔했다. 광장시장에 음식을 즐기러 왔는데 이렇게 쇼핑에 꽂히시다니. 이분들이 한국 전통 제품에 이렇게 푹 빠질 줄은 나도 전혀 예상을 못 했다. 그런데 식사 중에 두 분이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 주셨다. "이기야, 우리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미국의 중년 여성들은 오늘 우리가 산 이런 제품들을 다 정말 좋아할 거야. 이 테이블보, 이 천연 염색 드레스. 이런 건 진짜 한국적이면서 퀄리티가 굉장히 좋고, 무엇보다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중에 우리 같은 손님들 투어를 하면 꼭 이런 데로 데려다 줘. 아니, 거꾸로 아예 이런 것들을 찾아다니는 투어를 네가 한번 구상해 봐. 그러면 대박이 날 거야." 조언이 너무 구체적이고 날카로워서 좀 놀랐는데, 알고 보니 이 두 분이 여행업에서 일하는 분들이었다. 부사장님은 미국의 휴양지 리조트에서 마케팅을 총괄하는 분이고, 부장님은 그분의 비서 역할을 하는 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날 미국 여행업계의 전문가 두 분을 하루 종일 모시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피드백을 직접 받은 거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ㅡㅡㅡ 광장시장에서 쇼핑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지만, 불교 사찰을 꼭 보고 싶다고 하셔서 길상사는 동선과 시간관계상 가지 못하고 대신 조계사에도 잠깐 들르고, 바로 옆 인사동에는 오후 4시쯤 도착했다. 근데 이미 오전에 옹기를 잔뜩 사고 광장시장에서도 이것저것 잔뜩 사셨으니 좀 피곤하기도 하셨는지, 인사동에서는 "여기 진짜 좋은 물건이 많네" 하면서도 특별히 쇼핑은 안 하고 가볍게 구경만 하셨다. 그렇게 그날 일정이 마무리됐다. 돌아보면 참 반전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긴장하면서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정말 재밌는 분들이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중년 여성분들은 뭔가 아줌마 포스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를 거의 아들처럼 챙겨 주셨다. 나도 나이가 적지 않은데 말이다. 사실 그날 내가 손님들 앞에서 큰 실수를 하나 했다. 투어 중에 이분들과 호떡을 사 먹었는데, 그 전부터 계속 투어를 해서 피곤했는지 긴장을 해서 그랬는지, 그 호떡 가게에 핸드폰을 두고 온 것이다. 핸드폰이 없어진 걸 안 순간 진짜 패닉이 왔다. 다행히 지나온 길에 있던 그 호떡 가게로 다시 가 보니 핸드폰이 그대로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는데, 그 난리가 나는 동안 두 분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 주시고 같이 찾아 주려고 애를 많이 써 주셨다. 그분들 눈에는 내가 얼마나 어리버리해 보였을까. 그래도 하루 종일 여기 뛰어다니고 저기 뛰어다니는 노력하는 모습 때문에 좋게 봐 주신 것 같다. 호텔에 모셔다 드릴 때 두 분이 활짝 웃으며 오늘 정말 재밌었다고, 팁까지 두둑하게 챙겨 주셨다. 돈도 벌고 배운 것도 많고,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하루 투어였다. 이번 투어를 하면서 제일 크게 느낀 게 이것이다.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나도 가이드하면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투어를 하다 보면 뭔가 크고 유명하고 화려한 걸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경복궁,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주의 금관. 역사가 깊고 뛰어난 예술적, 미적 가치를 지닌 유산들이다. 물론 그런 유산을 보며 손님들은 감탄한다. 근데 이날 그분들이 정말 좋아했던 건 그런 거대한 문화유산보다 옹기였고, 모시 테이블보였고, 승복이었고, 천연 염색 드레스였다. 우리한테는 너무 당연해서 어떻게 보면 촌스럽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들. 그런데 바로 그런 것들에 미국 여행업계의 부사장님이 열광하고 있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 정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게 진짜 맞는 말이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고, 가이드로서 보람도 느끼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느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크고 화려한 우리의 문화유산은 당연히 계속 알려야 한다. 근데 이런 소소한 것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가. 이걸 잘 보존하고 개발하고 조금 더 상품화한다면 한국 관광에 굉장히 큰 경쟁력이 되겠다. 짧은 하루 투어였지만 정말 많은 걸 느끼고 배운 하루였다. 투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매번 비슷한 것 같은데 매번 다르다. 같은 공간을 가도 손님이 다르니까 완전히 다른 투어가 된다. 그리고 그 다른 손님들이, 우리가 그냥 지나치던 것들의 가치를 매번 새로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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